(주)진명시엔디 최진호 회장 / 한국도시정비협회 부회장

(주)진명시엔디 최진호 회장
한국도시정비협회 부회장

어렸을 적, ‘동물의 왕국’이라는 프로그램을 정말 좋아했다. 이 업을 하지 않았다면 필히 수의사나 동물원의 관리인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런 취미로 인해 나는 여전히 시간이 날 때면 동영상으로 동물의 왕국을 보곤 한다.

하루는 아주 재미있는 영상들을 봤다. 사자가 들소를 잡아먹는 영상이 아니라 들소가 단체로 사자를 역공해 위기를 모면하는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

나는 이글을 보는 여러분께 질문하고 싶다.

당신은 사자인가, 아니면 들소떼의 한 무리인가? 자신의 용맹을 자랑하며 초원을 누비는 사자인가, 아니면 한 마리의 사자에 겁먹어 나만 살자고 뛰어 도망가는 수천마리의 들소인가, 그것도 아니면 들소여도 힘을 합쳐 사자를 몰아내는 보기 드문 들소인가. 한번 생각해 보시길 바란다.

우리가 있는 이 재개발·재건축판은 실로 다양한 형태의 인간들이 모여 있는 동물의 왕국이라 할 수 있겠다.

작은 먹이를 먹고 살아가는 초식동물부터 매일 매일 엄청난 양의 남의 살을 뜯어 먹어야 생존할 수 있는 맹수들, 그리고 그 주변의 하이에나까지 정말 유사한 점이 많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밀림의 초원에서 어느 동물과 같은 위치에 있다고 해야 할까. 개인적인 생각으론 사자도 아니고, 초식동물도 아닌 참 애매한 지경에 놓였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초원의 사자, 호랑이, 표범과 같은 맹수들은 당연히 거대자본을 운용하는 대기업 건설사와 제도를 만들고 바꾸는 정치인 또는 관료기관일 것이다. 그리고 수없이 많은 종류의 초식동물은 총회책자 제사업경비 항목들에 나오는 수많은 업종을 영위하는 사업자들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럼 정비사업전문관리업을 영위하고 있는 우리는 누구일까? 수많은 초식동물보다는 당연히 힘이 세지만 언제나 맹수 앞에서는 최초의 밥이 되고, 힘없이 도망가며 쓰러지는 들소와 같다고나 할까. 글을 쓰면서도 그 처지가 갑자기 서글퍼지기도 한다.

그러나 만일 들소가 힘을 모아 단체로 사자의 공격에 대항한다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사자는 마구잡이로 들소를 공격하지 못할 것이다. 최근 동영상에서 봤던 사자를 공격하는 들소무리들 처럼 이제는 우리도 위협을 받을 때에는 의견을 모으고 목소리를 높이는 그런 일들을 해야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무슨 일이 생기면, 무슨 법령이 생기면, 무슨 제도가 생기면, 그것에 우리의 의견을 반영하기보다는 ‘내가 먼저 살아가야지’, ‘내가 먼저 적응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모두가 공격하는 사자를 향해 달려들지 않고 달려오는 사자의 반대편으로 도망치고, 내가 꼴지가 돼 잡혀먹히지 않게 하기 위해 뛰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제정 당시에도 우리의 의견은 무시됐고, 시공사 선정이 늦어져 ‘쟁빚’을 내 대여비를 주면서도 도둑놈 소리를 들어야 했으며, 공무원도 아니면서 공무원 의제 처리돼 법적인 불이익을 받고, 무슨 큰일만 나면 쥐잡듯 조사를 받는 것이 일상화 됐다.

그래도 우리는 끊임없이 생존해왔고, 정비사업을 해왔다.

하지만, 서두에 언급한 색다른 동영상처럼 이제는 우리도 색다른 사고와 전략을 갖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대표적으로 최근 법규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추진위원회 선정 정비회사 조합승계불인정과 관련된 부분은 우리와 아주 밀접한 법규정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의견과 처지를 묵살한 사항인 만큼 너무나도 처참한 상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비회사를 추진위원회에서 선정하고, 정비회사가 조합을 설립하면, 설립된 조합에서 다시 정비회사를 선정한다는 것이 골자다.

지금 국회에 계류되고 있는 이 법안이 통과되면, 또다시 여러 가지 편법이 등장할 테고, 내가 만든 조합에 또 다시 내가 영업을 해야 하는 웃지못할 상황이 펼쳐질 터인데, 이를 그저 웃으면서 지켜봐야 하는지 생각해 볼 때다.

거창한 독립운동이나 민주화운동은 아니지만, 우리의 생존과 명예가 달려있는 이번 싸움에 여러 정비회사 임직원들의 용기 있는 동참이 필요한 때다.

함께 행동하고 함께 나아가자.

 

키워드

#N
저작권자 © 도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