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시정비협회 이승민 회장 / 오엔랜드21 대표이사

- 대책 없는 부동산대책, 언제까지 내놓을 것인가

 

한국도시정비협회 이승민 회장 / 오엔랜드21 대표이사

또 나왔다. 부동산대책이. 21번째니 22번째니, ‘6.17부동산대책’ 관련 기사를 쓰는 기자들도 헷갈려한다. 21번째 대책이라고 한다면, 현 정부가 출범한지 이제 만 3년이 지났으니, 2개월이 채 되지 않을 때마다 ‘대책’을 내놓은 셈이다. 이런 추세라면 현 정부 임기가 2022년 5월에 끝나니 이 기간 동안 10여 차례의 대책이 또 나오지 않을까 싶다. 아니, 부동산대책을 발표할 때마다 “아직 주머니 속에 대책이 많이 있다”고 자랑하고 있으니 예상을 뛰어넘을 만큼 쏟아낼지도 모른다.

효과가 고작 1~2개월도 못 가는 대책을 대책이랍시고 쏟아내는 와중에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닫고 있다. 2017년 6억 원이 채 안됐던 서울지역 아파트의 중위가격은 금년 초 9억 원을 넘겼다. 서울 아파트 거주자 절반 이상이 9억 원 이상의 ‘고가주택’에 살게 됐으니 기뻐해야 하는 것일까?

현 정부는 국토부장관이 직접 나서서 “집을 투기수단으로 전락시키는 일을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고 했고, 대통령 비서실장은 “수도권에 2채 넘게 보유한 비서관급 이상은 한 채 빼고 나머지 주택을 처분하라”고 목소리를 높였었다. 하지만, 정작 이 말을 한 비서실장은 서울 서초와 충북 충주에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고(그래서 수도권이라고 지역을 한정했는지 모르겠다), 청와대 참모진들 또한 3명 중 1명꼴로 다주택 보유자로 밝혀졌다. 또, 청와대 대변인은 거액의 은행 대출을 끼고 흑석동 재개발구역 내의 상가건물을 수십억 원을 들여 ‘올인 투자’했었다.

일반 국민들은 집을 사고 싶어도 대출 규제로 사지 못하고, 그나마 전세를 끼고 마련하려 했더니 ‘갭 투자’를 막는다면서 이조차 하지 말라고 한다. 무주택자라도 전세대출을 받은 뒤 서울에 3억 원을 초과하는 아파트를 구입하면 전세대출을 즉시 회수한다는 게 ‘대책’에 포함되어 있으니 “무주택자는 죽을 때까지 전세나 월세로만 살라는 거냐”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대책 없는 부동산대책’ 남발로 오히려 집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상승하면서 현 정부에 대한 지지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진 30~40대들의 반발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사실상 기존의 집을 사고 빌리던 방식들이 모두 ‘투기’로 간주돼 ‘규제’의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서민들은 전․월세를 살면서 조금씩 꾸준히 돈을 모은 뒤 부족한 자금은 은행 대출을 통해 집을 사거나 전세를 살면서 적당한 매물이 나오면 전세를 끼고 매입하곤 했다. 정부 논리에 따르면 이것도 이젠 ‘투기’이다.

6.17대책에 대한 비판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지자 정부는 일주일도 안 돼 “실수요자를 위한 예외조항 등 보완책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대책의 효과가 1~2개월은 고사하고 1주일도 못가는 ‘졸속’이었음을 시인한 셈이고, ‘보완책’이라는 ‘땜질’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러면서도 청와대 정책실장은 6.17 부동산 대책과 관련해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쓸 수 있는 모든 정책수단을 동원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번에 발표한 6·17대책도 모든 정책 수단을 다 소진한 것은 아니다”라면서 여전히 뜬구름만 잡고 있다.

6.17대책으로 인해 실수요자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대책 없는 대책 남발로 점점 더 멀어져만 가는 내 집 마련의 꿈을 보면서 실수요자들의 인내심도 바닥이 났다. 이런 상황에서 정책실패를 인정하기는커녕 “더 센 게 남아있다”는 예고편을 또 내보내고 있으니 도대체 주택가격이 얼마나 더 올라가야 ‘대책남발병’을 고칠 것인가. 설마하니 전국의 집값이 서울 강남집값만큼 올라가고 나서야 “전국적으로 집값이 안정됐다”고 자화자찬할 것인가.

그동안 정부는 주택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양질의 아파트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시장의 요구를 철저히 무시한 채 오직 “집을 팔라”며 가격을 힘으로 억누르려는 정책만 되풀이했다. 주택가격 상승의 주범은 재건축․재개발이라며 정비사업에 대한 가혹한 규제를 계속했다. 서울 집값을 잡기 위해 그린벨트를 훼손하면서까지 수도권에 ‘베드타운’만 확장시켰고, 이들 지역의 교통문제를 해결해준다며 ‘경전철’이나 ‘GTX(수도권광역급행철도)’ 도입한다면서 ‘교통호재’에 따른 주택가격 상승만 초래했다.

서울 강남권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한다면, 거의 대부분의 정비사업지역은 더 이상 사업을 추진할 수 없을 만큼 사업성이 극도로 낮아진 상태이다. 그리고, 일부 투기(혹은 투자) 세력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들 정비사업지역의 토지등소유자는 대부분 수년에서 십수년간 그 지역에서 거주하고 있거나 주택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누구처럼 ‘올인 투자’를 한 것도 ‘갭 투자’를 한 것도 아닌 보통 사람들이다.

이들은 그동안 줄기차게 “숨을 쉴 수가 없다”고 호소해왔고, 가혹한 규제를 다소라도 완화해달라고 요구해왔다. 그런데, 그 많은 대책에 “숨을 쉴 수가 없다”는 이들의 호소는 1도 반영되지 않았고, 그런 가운데 ‘6.17대책’이 나왔고, “더 센 것”이 준비되어 있다는 ‘협박’을 받고 있다.

이쯤 되면 막 나가자는 것 아닌가! 고민에 고민을 더한 끝에 나온 ‘대책’이 아니라 대중들이 듣기 좋은 소리만 쏟아낸 ‘쇼’가 아니었는가.

이젠 한숨도 안 나온다. 집값이 떨어진다는 확신이 들면 정부가 나서서 “팔아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아도 다주택자들은 앞 다퉈 집을 처분할 것이다. 실수요자들도 하락세에 구태여 무리하면서 집을 장만하려 하기보다는 좀 더 차분하게 자신이 살 집을 사거나 주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라 인식전환을 할 것이다. 실수요자들이 원하는 지역에 원하는 양질의 주택이 공급되지 않는 한 주택가격 상승을 멈추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한 마디만 더 하자.

바보야, 문제는 공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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